상사화 꽃이 안 피는 이유|봄에 잎이 사라져도 기다려야 하는 꽃

늦여름 정원에서 잎 없이 긴 꽃대 위에 피어난 연분홍색 상사화와 꽃봉오리 모습

들어가는 말

 몇 년 전 봄, 식물원에 갔다가 상사화 구근 열 개를 사 왔다. 정원 한쪽에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심고 물도 주고 거름도 챙겼지만 그해에는 꽃이 피지 않았다. ‘가을에 심어야 하는데 봄에 심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갔다.

이듬해 봄에는 길고 푸른 잎이 무성하게 올라왔다. 올해는 틀림없이 꽃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잎이 누렇게 시들더니 모두 사라졌다. 물이 부족한 줄 알고 걱정했지만, 상사화는 원래 봄잎이 사라진 뒤 한동안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쉬는 꽃이었다.

여름이 되자 오며 가며 꽃대가 올라오는지 살펴보았다. 나중에야 상사화는 잎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뒤 8월 무렵 꽃대만 마법처럼 올린다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은 나처럼 상사화를 처음 심고 꽃이 피지 않아 기다리는 분들을 위해, 심는 시기부터 물주기와 잎 관리까지 실제로 알아 두어야 할 다섯 가지를 정리해 본다.

1. 봄잎이 사라져도 죽은 것이 아니다

상사화는 수선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구근식물이다. 가장 독특한 점은 잎과 꽃을 동시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봄에 길고 푸른 잎이 먼저 올라와 햇빛을 받으며 구근에 양분을 저장하고, 초여름이 되면 누렇게 변해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한동안 빈자리만 남아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땅속 구근은 꽃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통 7월 말부터 8월 사이, 잎 하나 없는 자리에서 꽃대가 솟아올라 연분홍빛 꽃을 피운다.

나도 이 생육 과정을 몰랐을 때는 무성했던 잎이 갑자기 사라지자 물이 부족하거나 병이 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상사화가 계절을 보내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그리워한다는 뜻에서 ‘상사화’라는 이름도 붙었다. 다만 붉은 꽃무릇은 보통 9월 무렵 꽃을 피우고 꽃이 진 뒤 잎이 돋는다는 점에서 일반 상사화와 생육 시기가 조금 다르다. 구근을 살 때는 상사화인지 꽃무릇인지 먼저 확인해야 개화 시기를 기다리며 혼동하지 않는다.

2. 꽃이 피지 않은 것이 봄에 심었기 때문일까

상사화 구근을 봄에 심었다고 해서 반드시 꽃이 피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옮겨 심은 첫해에는 새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는 데 힘을 쓰느라 꽃을 건너뛸 수 있다. 구근이 작거나 뿌리가 많이 손상된 경우에도 잎만 올리고 꽃을 피우지 않는 일이 생긴다. 따라서 심은 해에 꽃이 없더라도 바로 실패라고 판단하지 말고 한두 해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내가 심은 상사화도 처음에는 꽃이 없어 심은 시기만 탓했지만, 구근이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상사화는 잎이 마른 휴면기인 초여름이나 꽃이 진 뒤 옮겨 심는 것이 비교적 안전하다. 구근 위로 흙이 약 5~7cm 덮이게 심고, 구근 사이는 10~15cm 정도 띄워 준다. 너무 깊게 묻으면 꽃대가 올라오는 데 힘이 들고, 지나치게 얕으면 뿌리가 드러나거나 겨울 추위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물이 고이는 땅은 구근이 썩기 쉬우므로 부엽토와 마사토 등을 섞어 배수가 잘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심은 자리는 이름표로 표시해 두어 휴면기에 실수로 파헤치지 않도록 한다.

3. 잎이 자라는 동안의 관리가 꽃을 결정한다

상사화는 꽃이 필 때보다 봄에 잎이 자랄 때 관리가 더 중요하다. 푸른 잎은 단순히 한철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햇빛을 받아 다음 꽃을 피울 양분을 구근에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잎이 무성하다고 미리 묶거나 잘라 버리면 구근이 충분히 살찌지 못해 다음 해에도 꽃을 보기 어려워질 수 있다. 잎끝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해도 손으로 뽑지 말고, 전체가 완전히 마를 때까지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자리도 개화에 영향을 준다. 상사화는 밝은 햇빛이 들면서 한여름에는 어느 정도 그늘이 생기는 곳에서 잘 자란다. 큰 나무 아래나 오전 햇빛이 드는 화단이 알맞지만, 하루 종일 빛이 거의 들지 않는 짙은 그늘에서는 잎만 자라고 꽃이 뜸해질 수 있다. 비료는 봄에 잎이 자랄 때 완숙 퇴비나 구근식물용 비료를 소량 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꽃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질소질 비료를 많이 주면 잎만 무성해질 수 있으므로 과한 거름은 피한다. 상사화는 많이 챙기는 것보다 필요한 때 조용히 기다려 주는 편이 더 잘 맞는 꽃이다.

4. 잎이 사라진 여름에는 물을 줄여야 한다

상사화의 잎이 모두 사라지면 물이 부족해 죽어 가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나 역시 빈 땅을 바라보며 물을 더 주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이때는 구근이 휴면에 들어가는 시기이므로 봄처럼 자주 물을 줄 필요가 없다. 노지에 심었다면 자연적으로 내리는 비만으로도 지낼 수 있으며, 장마철에는 오히려 물이 고이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축축한 흙이 오랫동안 이어지면 구근이 물러 썩어 꽃대를 올리지 못할 수 있다.

화분에 심은 상사화도 받침에 물이 고이지 않게 하고, 흙이 충분히 마른 것을 확인한 뒤 물을 준다. 그렇다고 구근을 장기간 바싹 말리는 것도 좋지 않으므로 흙의 상태를 살피며 조절해야 한다. 늦여름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흙이 지나치게 마르지 않도록 물을 보충하되, 매일 정해 놓고 주기보다는 날씨와 배수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상사화 물주기의 핵심은 ‘잎이 자랄 때는 부족하지 않게, 잎이 사라진 휴면기에는 과하지 않게’다. 특히 장마가 긴 해에는 물을 주는 것보다 배수로를 정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5. 몇 해 기다려도 꽃이 피지 않는 이유

상사화를 심은 뒤 여러 해가 지나도 꽃이 피지 않는다면 몇 가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먼저 봄잎을 너무 일찍 잘라 내지 않았는지, 심은 자리가 지나치게 어둡지 않은지 살핀다. 구근을 너무 깊게 묻었거나 질소질 거름을 많이 준 경우에도 잎만 무성하고 꽃이 적을 수 있다. 반대로 구근이 너무 빽빽하게 불어나 서로 양분을 다투면 꽃대가 줄어들기도 한다. 이때는 잎이 완전히 마른 휴면기에 구근을 캐서 나누어 심는다. 다만 상사화는 옮겨 심은 직후 꽃을 쉬기도 하므로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매년 자리를 바꾸지 않는 편이 좋다.

분구는 보통 3~4년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 캐낸 구근 가운데 단단하고 건강한 것을 골라 상처 난 부분을 잠시 말린 뒤 다시 심는다. 상사화 구근에는 리코린과 같은 독성 성분이 있으므로 먹지 않도록 주의하고, 어린이나 반려동물이 파헤치지 않는 자리를 선택한다. 구근을 만진 뒤에는 손도 깨끗이 씻는다. 열 개를 둥글게 심은 나의 상사화도 당장 꽃이 없다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봄잎이 구근을 살찌우고 여름의 빈자리가 다음 꽃을 준비하는 시간임을 믿고 기다려야 했다.

상사화는 잎이 사라진 빈자리에서 어느 날 갑자기 꽃대를 올린다.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땅속에서는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올해 꽃이 피지 않았더라도 잎을 잘 키웠다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심은 자리를 잊지 않고 기다려 주다 보면, 늦여름 어느 아침 연분홍 꽃이 원을 그리며 피어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정원365의 생각 — 보이지 않아도 준비하는 시간

상사화를 키우며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봄에 무성했던 잎이 모두 사라지자 죽은 줄 알았고, 빈자리만 바라보며 꽃이 피지 않는다고 조급해했다. 하지만 상사화는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구근을 키우며 자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의 삶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애써 물을 주고 거름을 주었는데도 아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다고 해서 그 시간이 모두 헛된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을 모으고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해 그리움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정해진 때를 놓치지 않고 마침내 꽃을 피운다. 올해 꽃대가 올라오지 않더라도 조금 더 기다려 보려 한다. 정원은 서두른다고 꽃을 먼저 보여 주지 않는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에게 어느 날 뜻밖의 꽃 한 송이로 대답해 줄 뿐이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목수국 관리법|꽃이 피기 시작할 때 꼭 해야 할 7가지

소나무 전지 시기와 방법|건강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만드는 관리 법

알리움 꽃 쓰러지지 않고 잘 키우는 방법|초보 정원사가 직접 키우며 배운 관리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