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는 왜 같은 꽃만 계속 찾아올까? 정원에서 발견한 작은 비밀

들어가는 말

올여름 정원에서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장미 앞도, 목수국 앞도 아니었습니다. 작은 란타나 앞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연인 줄 알았습니다. 노란색과 분홍색이 섞인 작은 꽃송이들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호랑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그 꽃에 내려앉았습니다. 잠시 꿀을 먹더니 날아오르기에 다른 꽃으로 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뒤 다시 같은 란타나로 돌아왔습니다.

그날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비슷한 모습이 반복되었습니다. 주변에는 에키네시아도 피어 있고 장미와 목수국, 백일홍도 한창 아름다웠지만 호랑나비는 유난히 란타나를 오래 맴돌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나비는 왜 수많은 꽃 가운데 같은 꽃을 계속 찾아올까?

그 답을 찾아보니 그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었습니다. 나비와 벌 같은 꽃가루받이 곤충에게는 먹이를 얻었던 꽃을 반복해서 이용하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그 이유를 알고 나니 정원의 풍경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1. 나비는 꽃을 기억한다|같은 꽃을 찾는 '꽃 충실성'

사람들은 흔히 나비가 아름다운 꽃을 찾아다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비에게 꽃은 감상의 대상이라기보다 먹이를 얻는 장소입니다.

한번 꿀을 얻은 꽃의 색이나 모양, 향기 같은 특징을 학습하면 비슷한 꽃을 다시 방문하는 행동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꽃을 계속 탐색하는 것보다 이미 먹이를 얻었던 종류의 꽃을 이용하는 편이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태학에서는 벌이나 나비 같은 꽃가루받이 곤충이 일정 시간 동안 같은 종류의 꽃을 반복해서 방문하는 행동을 '꽃 충실성(Flower Constancy)'이라고 합니다. 곤충에게는 먹이 탐색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고, 식물 입장에서는 같은 종의 꽃 사이에서 꽃가루가 옮겨질 가능성을 높여 줍니다.

며칠 동안 제가 촬영한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 비슷한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호랑나비는 란타나에서 꿀을 먹고 잠시 날아올랐다가 다시 란타나로 돌아왔습니다. 주변에 다른 꽃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물론 사진 몇 장만으로 그 나비가 정확히 무엇을 기억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종류의 꽃을 반복해서 찾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고 나니, 정원에서 벌어지는 작은 행동 하나에도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2. 란타나는 왜 나비를 불러 모을까|작은 꽃송이에 숨겨진 비밀

란타나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한 송이 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러 개의 작은 꽃이 둥글게 모여 하나의 꽃차례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비는 한곳에 내려앉은 뒤 작은 꽃들을 차례로 방문하며 꿀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나비에게 꽤 효율적입니다. 꽃과 꽃 사이를 멀리 이동하지 않아도 한 자리에서 여러 개의 작은 꽃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촬영한 사진에서도 호랑나비는 란타나 한 꽃차례에 한동안 머물면서 천천히 자리를 옮겼습니다.

란타나의 색도 눈길을 끕니다. 품종에 따라 노란색, 주황색, 분홍색, 붉은색 등 여러 색이 한 꽃차례에서 함께 나타나기도 하고, 꽃이 피고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변하기도 합니다.

란타나처럼 작은 꽃이 모여 있고 오랫동안 꽃이 이어지는 식물은 나비에게 지속적인 먹이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원에서 란타나를 키우다 보면 나비가 꽃 주변을 맴돌거나 오래 머무는 모습을 비교적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색이 화려해서 나비가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하고 나니 꽃의 구조와 먹이의 효율성도 나비의 선택에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3. 나비는 꽃의 색만 보는 것이 아니다|향기와 자외선, 꽃이 보내는 신호

사람의 눈에는 정원이 여러 색의 꽃으로 가득 차 보입니다. 하지만 나비가 바라보는 꽃은 우리가 보는 모습과 조금 다릅니다.

나비는 꽃의 색만 보고 날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꽃의 색과 향기, 모양, 꿀의 상태 등 여러 정보를 이용해 먹이를 찾습니다.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자외선 영역의 무늬도 곤충의 꽃 탐색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일부 꽃에는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자외선 반사 무늬가 있습니다. 이런 무늬가 꽃가루받이 곤충에게 꽃의 중심부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일종의 안내 신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란타나 역시 나비가 이용하기 좋은 여러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작은 꽃들이 한데 모여 있고, 꽃이 이어서 피며, 눈에 잘 띄는 색을 보여 줍니다. 한 번 내려앉으면 여러 개의 작은 꽃을 연속해서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사진 속 호랑나비를 자세히 보면 란타나 위를 천천히 움직이며 꽃에 긴 관 모양의 입인 흡밀관을 넣어 꿀을 먹습니다. 사람에게는 하나의 둥근 꽃송이처럼 보이지만 나비는 그 안에 모여 있는 작은 꽃을 차례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원을 오래 가꾸다 보면 꽃을 보는 눈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꽃의 색이 먼저 보이지만, 어느 순간 꽃을 찾아오는 곤충이 보이고, 그다음에는 왜 그 곤충이 그 꽃을 선택했는지가 궁금해집니다. 그렇게 바라보면 정원은 단순히 예쁜 꽃을 심어 놓은 공간이 아니라 식물과 곤충이 끊임없이 관계를 맺는 작은 생태계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4. 나비가 찾아오는 정원|꽃과 곤충이 함께 사는 공간

정원을 가꾸면서 가장 반가운 손님 가운데 하나가 나비입니다. 저도 호랑나비가 찾아오는 날이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한참 바라보게 됩니다.

나비가 정원에 머물려면 무엇보다 먹이가 되는 꽃이 필요합니다. 한 종류의 꽃이 잠깐 피었다 지는 정원보다 계절에 따라 여러 꽃이 이어서 피는 공간이 나비와 벌 같은 꽃가루받이 곤충에게 더 많은 먹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번 여름 제 정원에서도 호랑나비는 여러 꽃 사이를 날아다녔지만, 제가 관찰했을 때 특히 오래 머문 곳은 란타나였습니다. 작은 꽃들이 모여 계속 피고 있는 란타나는 나비에게 좋은 먹이터가 되어 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원이 아름다운 이유는 꽃이 많아서만이 아니라, 그 꽃을 필요로 하는 생명들이 찾아오기 때문이 아닐까.

정원은 사람만을 위한 공간은 아닙니다. 벌과 나비 같은 곤충은 꽃을 찾아다니며 꽃가루받이에 관여하고, 작은 곤충은 또 다른 생물의 먹이가 됩니다. 식물과 곤충, 새와 작은 생물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정원은 조금씩 살아 있는 공간이 됩니다.

그래서 나비와 벌 같은 수분곤충을 위한 정원을 만들고 싶다면 꽃의 화려함만 생각하기보다 봄부터 가을까지 꽃이 이어지도록 여러 식물을 함께 심는 것이 좋습니다. 농약 사용을 가능한 한 줄이고, 곤충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식물과 공간을 남겨 두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나비 한두 마리가 찾아왔다고 해서 정원 전체의 생태적 건강성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꽃을 찾아오는 곤충이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 공간이 그들에게 먹이나 머물 곳을 제공하고 있다는 반가운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정원365 가드너의 생각

이번 글을 쓰면서 가장 오래 바라본 것은 꽃이 아니라 호랑나비였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다 보니 나비는 꽃에 잠깐 내려앉았다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같은 종류의 꽃을 반복해서 이용하기도 한다는 것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정원을 가꾸는 일도 조금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아름다운 정원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봄에 꽃을 심고, 여름에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며 기다리는 시간이 쌓인 뒤에야 어느 날 벌이 오고 나비가 찾아옵니다. 사람의 눈에는 작은 변화일지 몰라도 정원을 가꾸는 사람에게는 그런 순간이 꽤 큰 기쁨으로 남습니다.

올해도 호랑나비가 란타나를 찾아왔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가꾸어 온 정원이 나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꽃을 피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꽃을 찾아오는 생명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정원. 요즘 제가 만들고 싶은 정원은 그런 곳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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