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멀쩡했던 토마토를 보며, 암 선고를 받던 날을 떠올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잎이 조금씩 말라 가기에 물이 부족한 줄 알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었다. 물을 주고 나면 잠시 잎이 펴지는 듯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축 늘어졌다.
줄기를 잘라 보니 겉에서는 보이지 않던 안쪽이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물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줄기 속에서 병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몇 년 전 암 선고를 받던 날의 내가 떠올랐다.
당시 나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계룡산을 올랐다. 갑사에서 관음봉과 삼불봉을 지나 동학사까지 한 바퀴 도는 데 대여섯 시간이 걸렸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 산을 다녀온 뒤의 개운함이 더 좋았다. 산에 가지 못하는 날에는 테니스를 쳤다. 누가 보아도 건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암이라는 말을 들었다. 겉은 멀쩡했지만 몸속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이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토마토 일곱 그루 중 한 그루만 남았다
올해 4월 말, 해마다 그랬듯 밭에 여러 가지 채소를 심었다. 일반 토마토 세 그루와 방울토마토 네 그루도 사다 심었다. 모종이 뿌리를 잘 내리도록 물을 주고 곁순도 부지런히 따 주었다.
토마토는 밭의 맨 앞줄에 심었다. 외출했다 돌아올 때마다 쉽게 들여다볼 수 있고, 열매가 익으면 오가며 하나씩 따 먹기에도 좋은 자리였다. 줄기가 굵어지고 키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머지않아 빨갛게 익을 토마토를 상상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아침, 한 포기의 잎이 살짝 말려 있는 것이 보였다.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메말랐던 때라 당연히 물이 부족한 줄 알았다. 호스를 끌어다 충분히 물을 주니 잎이 조금 펴지는 듯했다. 그러나 저녁에 돌아와 보니 다시 시들어 있었다.
며칠 동안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어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 알아본 뒤 줄기를 잘라 확인해 보았다. 줄기 안쪽의 물관이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단순한 물 부족이 아니라 시들음병이나 풋마름병과 같은 토양 전염성 병을 의심해 보아야 하는 모습이었다.
정확한 병명은 사진만으로 단정하기 어려웠지만, 이미 줄기 안쪽까지 병이 진행된 포기는 회복하기 쉽지 않았다. 한 포기에서 시작된 증상은 다른 포기에도 나타났고, 결국 일곱 그루 가운데 한 그루만 남았다.
물만 주었던 시간이 미안했다
갈색으로 변한 토마토 줄기를 보는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겉으로는 줄기도 굵고 키도 잘 자라 튼튼한 줄 알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는 병이 번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목이 마른 줄만 알고 계속 물을 주었다.
토마토를 심으며 얼마나 많은 장면을 미리 그려 보았던가. 가지마다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리고, 초록색 열매가 햇볕을 받으며 붉게 익어 가는 모습을 떠올렸다. 오가며 잘 익은 방울토마토를 하나씩 따 먹는 작은 즐거움도 기대했다.
그래서인지 병든 포기를 뽑아내는 일이 단순히 농작물 하나를 정리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좀 더 일찍 살펴보았더라면 어땠을까. 잎이 마르는 것만 보지 말고 줄기와 뿌리까지 세심하게 확인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물론 식물의 병은 주인이 조금만 더 정성을 들인다고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밭에서 같은 방식으로 키워도 어떤 포기는 병들고 어떤 포기는 살아남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병든 토마토 앞에서는 자꾸만 ‘주인을 잘못 만난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나도 겉으로는 누구보다 건강해 보였다
토마토 줄기 안쪽의 갈색 흔적을 바라보는데, 몇 해 전 병원 진료실에 앉아 있던 내 모습이 겹쳐졌다.
그 무렵 나는 산을 자주 다녔고 테니스도 쳤다. 운동을 많이 했으니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며칠 동안 밤샘 작업을 한 뒤, 한쪽 가슴의 모양이 이상하게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마음에 걸려 병원을 찾았다.
초음파검사를 마친 의사는 조직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웬 조직검사까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병원에 온 이상 의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검사 결과는 사나흘 뒤에 나온다고 했다. 나는 예약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고, 별일 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다시 일상으로 들어갔다.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에 간 날, 의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암이라고 말했다.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하며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가고 싶다면 소견서를 써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잠시 멈춘 듯했다.
‘내가 암이라고?’
산을 그렇게 자주 다녔고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앞이 캄캄해졌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이 현실이 되자 오히려 실감이 나지 않았던 것 같다.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의사와 간호사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아무렇지 않아서 나온 웃음이 아니었다. 너무 놀라 울 수도 없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몰라 몸이 먼저 만들어 낸 웃음이었다.
치료를 시작하고 흙이 있는 곳으로 왔다
진료실을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유방암이래. 빨리 치료해야 한대. 서울로 가려면 소견서를 써 준다고 하네.”
내가 담담하게 말하자 남편이 오히려 더 당황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남편은 소견서를 받아 오라며 자신이 병원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서둘러 서울의 병원을 알아보고 치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술부터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료진은 항암치료를 먼저 하자고 했다. 여섯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은 뒤 수술을 했다. 치료는 혼자 견디는 일이 아니었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면 남편과 아이들은 일정을 조정해 함께해 주었다. 내가 제대로 먹지 못할 때는 먹을 만한 음식을 찾아 챙겨 주었다.
그 무렵 남편은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며 공기 좋은 시골로 내려가자고 했다. 퇴직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내 건강을 먼저 생각하자며 결정을 밀고 나갔다.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 아래에 밭을 마련해 처음에는 주말농장처럼 오갔다. 그러다 그곳에 집을 짓고 본격적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남편은 시골집에서 직장으로 출퇴근했고, 나는 하던 일을 정리하고 몸을 돌보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흙은 내 일상으로 들어왔다.
제비꽃 한 포기도 함부로 뽑기 어려웠다
시골에 내려온 뒤 처음 만나는 것들은 모두 신기했다. 겨울이 물러갈 무렵 냉이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들과 산은 차츰 먹을거리로 가득해졌다. 도시에서는 마트에서 돈을 주고 사 먹던 나물을 직접 캐어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트에서는 채소가 싱싱한지, 가격은 적당한지부터 살폈다. 내가 지불한 돈만큼 값어치를 하는지 꼼꼼히 따졌다. 그러나 들에서 나물을 캐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내가 심지도, 특별히 가꾸지도 않은 것이 계절이 되면 저절로 올라와 먹을거리를 내어 준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겨울을 견디고 돋아난 첫 풀 한 포기도 신기하고 사랑스러웠다. 밭을 일구고 풀을 뽑는 힘든 일조차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다만 살아 보겠다고 땅 위로 올라온 풀을 내가 필요 없다는 이유로 뽑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어느 봄날 밭에 보랏빛 제비꽃이 피었다. 너무 예뻐서 다른 풀은 뽑으면서도 제비꽃만은 남겨 두었다. 그랬더니 이듬해 밭이 온통 제비꽃으로 덮였다. 농작물을 심을 자리를 내기 위해 결국 일부는 뽑아야 했지만, 지금도 제비꽃 앞에서는 손이 쉽게 나가지 않는다.
도시에서의 감사가 머리로 생각해 낸 것이었다면, 흙을 만난 뒤의 감사는 몸으로 느끼는 것이었다. 씨앗 하나가 싹을 틔우고, 이름 모를 풀이 꽃을 피우며, 작은 열매 하나가 익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웠다.
치료 후 5년, 졸업해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치료가 끝난 뒤에도 6개월마다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면 아무렇지 않은 척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동안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어디에 다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5년째 되던 해, 의사는 이제 졸업해도 되겠다며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했다. 정기적인 추적 관찰의 큰 고비를 잘 넘겼다는 뜻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 분명 기쁜 말이었지만 마냥 들뜨지만은 않았다. 조심스럽게 살아온 시간이 너무 길었고, 앞으로도 건강을 완전히 잊은 채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축하한다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우리 즐겁게 살아 보자.”
그 말을 들으니 지나온 시간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마다 함께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가 준 가족, 내가 먹지 못할 때 먹을 만한 음식을 찾아 준 아이들, 아침밥을 차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출근했던 남편이 생각났다.
“여보, 그동안 고생했어. 고맙고 미안해.”
그리고 쑥스러웠지만 한마디를 더했다.
“우리 이제 오래오래 즐겁게 살자. 사랑해.”
토마토가 다시 가르쳐 준 것
병든 토마토와 암을 같은 것으로 말할 수는 없다. 토마토 줄기의 변색만으로 병명을 단정할 수도 없고, 암 또한 겉모습이나 생활 습관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병이 아니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는 사실이 모든 질병을 막아 주는 것도 아니며, 암에 걸린 것이 건강관리를 잘못한 사람의 책임도 아니다.
다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 수 없다는 점에서, 토마토는 오래전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나는 시든 잎만 보고 물을 주었지만 정작 살펴야 할 곳은 줄기 안쪽이었다. 내 몸도 건강해 보인다는 자신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두려움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다. 토마토 일곱 그루 가운데 여섯 그루는 사라졌지만 한 그루는 아직 밭에 남아 열매를 키우고 있다. 나 역시 치료를 견디고 흙이 있는 곳으로 와서 다시 계절을 살아가고 있다.
완치라는 말보다 내게 더 중요한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일이다. 몸이 보내는 작은 변화를 지나치지 않고, 내 곁을 지켜 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밭에서 올라오는 생명을 오래 바라보는 일이다.
올해 토마토 농사는 실패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병든 줄기를 들여다본 그날, 나는 잊고 있던 마음 하나를 다시 꺼내 보았다. 살아 있다는 것은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까지 살피며 하루하루를 귀하게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