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다섯 아버지가 우울해하셨다|노년의 삶과 가족의 시간
나이가 들면 몸만 늙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버지가 우울해 하셨다.
거실 소파에 앉아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가 어느새 담요를 덮고 잠이 드신다. 원래 아버지 거실에는 늘 TV가 켜져 있었다.
조금 투박하고 시끄러운 프로레슬링이 하루 종일 나오곤 했다. 솔직히 징그럽고 시끄러워 속으로는 몇 번이고 꺼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TV도 켜지지 않은 채 어둠 속에 앉아 계신 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이상하게 짠했다.
“아버지, 왜 TV도 안 보세요?”
한참 뜸을 들이시던 아버지가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내가 올해는 못 넘길 것 같아. 자신이 없구나.”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요즘은 백세시대라고, 아직 한참 더 사실 거라고 웃으며 말하고 싶었지만 쉽게 농담이 나오지 않았다.
그해 아버지는 아흔다섯이셨다.
평생 성실하게 살아온 아버지
아버지는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셨다.
동장을 마지막으로 퇴직하시기까지 넉넉하지 않은 월급으로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다섯 남매를 책임지셨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안전한 삶이었다.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셨고 취미생활조차 절제하셨다.
밀주 단속과 세무 업무를 하면서도 부정이나 촌지를 받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학력으로 공무원이 되어 끝까지 책임을 다한 삶.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한 세월이었다.
덕분에 자식들은 모두 자리를 잡았고, 아흔다섯과 여든아홉의 부모님은 오랫동안 독립생활을 하셨다.
아버지도 스스로 그런 삶을 꽤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래서 더 낯설었다.
기운 없이 앉아 계신 모습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밥 한 끼였다
막내딸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다.
거창한 건 못 하더라도 밥 한 끼라도 챙겨드리자 싶었다.
마침 직장도 끝나 시간이 생긴 때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가 죽을 쑤고, 국을 끓이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반찬을 부드럽고 심심하게 만들었다.
아침을 일찍 드시는 습관에 맞추려면 새벽부터 움직여야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아, 참 맛있다. 여럿이 먹으니까 좋다.”
그 말 한마디가 참 오래 마음에 남았다.
평생 못해 본 효도를 아주 조금이나마 해 보는 기분이었다.
종점에 다 왔다는 말
어느 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죽음이 두려우세요? 저랑 책도 읽고 이야기 나누면서 같이 공부해 볼까요?”
벼르고 별러 꺼낸 질문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생각보다 담담하셨다.
“괜찮아. 아흔 넘고 보니 죽음이 그리 낯설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구나. 종점에 다 왔다는 느낌이랄까. 난 나름대로 준비가 되어 있으니 걱정 마라.”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먹먹했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담담하게 삶의 끝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대단해 보였다.
나는 조용히 아버지 손을 잡아드렸다.
아직은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이었다.
속으로 조용히 응원했다.
‘아버지, 조금만 더 힘내세요.
우리 종점까지 같이 가 보자고요.’
나이가 든 부모를 바라본다는 건 어쩌면 사랑이 깊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사랑은 결국 함께 밥을 먹고, 손을 잡고, 곁에 있어 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